5/08/2023

[Opening] Starbucks Paraguay ; 녹색 인어가 결국 도착했다.

Avenida Aviadores del Chaco, Asunción, 파라과이

 


인생에는 가끔, 어떤 것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대체로.. 그 무언가를 손쉽게 얻을 수 없을 때다.

한국에서는 커피숍이 신호등처럼 흔하다.
스타벅스 역시 쉽게 찾을 수 있다.
(2023년 1분기 기준, 한국에는 1800개 이상의 스타벅스 매장이 있다고 한다...)

거의 거리의 모든 구석에서 커피향이 느껴진다.
그곳에 살 때는 몰랐다.
그게 그저 도시 풍경의 일부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나는 파라과이로 왔고, 
초록초록하고 매력적인 이 아순시온에서
유일하게 찾을 수 없던 초록의 그 무엇, 바로 '녹색 인어'였다.

최근 몇 년간, 아순시온에도 커피 문화가 빠르게 뿌리내리고 있다.
아직은 다른 나라의 도시들만큼 카페테리아가 많은 건 아니지만,
이곳만의 정서를 담은 카페 문화가 견고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한국에서의 나는, 가끔 주문 대기 중에
앞 순서 사람들이 읊조리는 마법사의 주문 같은 복잡하고 섬세한 커피 주문을 듣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가끔, 놀랍게도 창의적인 닉네임으로 불리던 사람들의 드립력에 속으로 박수를 치기도 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예전에 어떤 '짤'에서, 누군가가 ‘이디야 커피’라고 닉을 설정해서 변경을 요청받았다다는 얘길 봤다....)


스타벅스는 시각, 청각, 후각을 비롯해
도시인들이 활용하는 거의 모든 감각기관을 장악하며,
많은 사람들의 기억의 배경이 된 브랜드다.


스타벅스 파라과이 런칭은 사실 올해 초부터 소문이 무성했다.
나도 계속 관심 있게 지켜보던 터였다.
쇼핑 델솔 입구에 오픈한다는 얘기도 들었고,
그러다 공사 중인 스타벅스의 로고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마치 내 가게가 오픈 준비 중인 것처럼 들떴다.


1호점이 쇼핑 델솔에 오픈한다고 했을 때,
'그치, 당연하지.'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1호점의 상징성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

개인적으로 델솔은 단순한 쇼핑몰 이상의 공간이다.
(오늘날 내가 리테일 테라피를 받으러 가는 자본주의 스파임을 차치하고서라도.)

파라과이에 처음 왔을 때 첫 번째 정차지였고 (환전 해야했다.),
도심의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아순시온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생활 서반아어 연습생으로서, 실전 연습을 가장한 구매활동에 한치의 게으름도 용납하지 않았다.
(요즘은 일 때문에 자주 간다.)



스타벅스 파라과이의 런칭이라는 설레는 소식은
딱, 아침에 커피를 준비하는 시간만큼 빠르게 내게 도착했다.
(아, 나는 아침에 비몽사몽하며 인스턴트 아아를 만든다. 그만큼 빠르게 오픈했다는 얘기다.)


행사장에는 일찍 도착했다,
시청각, 그리고 후각까지 자극하는 그 분위기 덕분에
내 안의 많은 기억들이 강제 소환되기 시작했다.
(입구에서부터 아주 그냥, 국제적인 기세넘치는 스타벅스의 클리셰에 사무쳤다.)


예전엔 여행 중 주변국에 들를 때, 스타벅스를 꼭 가곤 했다.
단지 자본주의의 향과 맛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기억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건 남의 동네에서 맛보는,
친한 친구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
구경하면서 살짝 즐기는 정도의 편안함이었다.
(여행 속의 여행, 감정 속의 감정.)

그런데 아순시온,
그것도 내 마당처럼 들락거리는 델솔에 생긴 스타벅스는_
내 어항에 들어온 녹색 인어.
왠지 모르게, 추억하기에 덜 낯간지러운 타당성을 부여해줬다.

그러니까.. 
‘어이, 드디어 네 동네에 도착했다. 네가 옛날에 살던 동네 스벅처럼 대놓고 감성(?)에 취해 앉아있어 봐. 물론 맥북이나 아이패드 들고 오는 거 잊지 말고.’의 느낌.


진짜, 한국에 있을 때의 기억들이
Pokemon GO의 AR 포켓몬들처럼 여기저기서 튀어 올랐다.

친구들과 행사장에서 나란히 앉아 일정 이야기를 나누는데,
시음용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사실 아메리카노의 맛은 어디든 비슷하다. 더욱이 글로벌 체인이라면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려 하니까.
게다가 내 커피 취향은 진흙의 텍스처와 칠흑의 컬러니까,  아순시온 밖에서 마시던 것과 똑같았다.)

하지만 스타벅스 특유의 향,
그게 이곳에서_
일주일에 몇 번씩 보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순간에

몇 가지 기억이 '톡' 하고 튀어 올랐다.
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못본지 오래된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나누던 여러 순간의 잔상들이 희미하게 스쳐서.
잠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아.. 잊고 있던
그놈의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감성이 깨어나는 중이었는데,
여기서 제법 세월을 보낸 탓인지... (나이 탓.)
문득 몇몇 기억은
스벅이 아닌 다른 브랜드의 소비 기억이었다는 걸 깨닫고
현실로 '툭' 돌아왔다.
(할리스, 카페베네, 투썸 등등 별별 생각 다했다.)

그래도,
스타벅스 리저브에 대한 기억은 한 번 더 곱씹으며,
행사장을 조용히 비집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