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되어 일시적으로 향유된 공동의 취향은 내향적이다.
현재의 호소가 아닌, 미래의 추억에 대한 무의식적인 배팅일 것이다.
어떠한 것들은 소음을 피해 더 빨리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소동이 발생하기 전에 파티장을 떠나버리는 친구들의 무리처럼.
내가 조잘거리는 ‘취향’이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 소비와 관련되어 있다.
음악도, 향기도, 잠잘 때 살갗에 닿는 침구의 질감도.
나아가 대부분의 감각 기관으로 느끼는 일상의 거의 모든 것들은—다 돈이다.
(딱 그 선에서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이가 들면서,
생활과 소비의 형태가 내 하루에 닿아있는 친구들과 함께, 혹은 그들에 의해(그들은 나에 의해) 천천히 달라지는 것 같다.
음악도, 향기도, 잠잘 때 살갗에 닿는 침구의 질감도.
나아가 대부분의 감각 기관으로 느끼는 일상의 거의 모든 것들은—다 돈이다.
(딱 그 선에서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이가 들면서,
생활과 소비의 형태가 내 하루에 닿아있는 친구들과 함께, 혹은 그들에 의해(그들은 나에 의해) 천천히 달라지는 것 같다.
오늘은 여기까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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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소비에 있어 가장 강한 영향을 주는 대상’이고
‘내 추억의 대부분은 소비를 매개로 전개된다’는
약간은 쓴맛 나는 결론을 내리게된다.
‘내 추억의 대부분은 소비를 매개로 전개된다’는
약간은 쓴맛 나는 결론을 내리게된다.
사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취향의 영역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취향의 범위는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