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가끔 참 잔인하다.
저녁에 별생각 없이 유튜브를 스크롤링하다가 발견한 41분짜리 영상 한 편에, 나는 앉은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이야기를 들었다.
파라과이 아동청소년부(MINNA) 채널에 올라온 《El Precio del Pasaje (차비의 대가)》. 대통령실이랑 영부인 사무실, 기술정보부까지 줄줄이 지원해서 만든 공공기관 캠페인 영화다. (요즘 파라과이 공공기관이나 기업들 오디오 비주얼 퀄리티는 정말 우수하다고 생각은 해왔지만, 이 정도로 사람 먹먹하고 얼얼하게 만드는 변화구는 예상하지 못했다.)
영화 초반, 까아구아수(Caaguazú)의 소박하고 포근한 풍경이 펼쳐진다. 영화 속에 펼쳐지는 풍경을 경험해 본 내 눈에는 그 익숙한 정서가 순식간에 훅 밀고 들어왔다. 그래서 더 쉽게 몰입했고, 그래서 더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내 눈물버튼은 딱 3분 36초부터 4분 36초까지, 정확히 1분간 이어지는 주인공 소녀가 집을 떠나는 장면이었다. 속으로는 부질없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냥 이 따뜻하고 아련한 톤 그대로 유지하면서, 몽글몽글하게 슬픈 영화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유승호 배우가 열연했던 영화 《집으로》 같은 그런 영화로...'
하지만 그 애틋한 이별 뒤로 잔인하게 타이틀이 박힌다.
El Precio del Pasaje.
떠나는 값어치였을까, 아니면 돌아오는 값어치였을까.
주연인 Milka Fretes(산드라 역)랑 Angie Pedrozo(미카엘라 역)부터 악역, 단역들까지 연기를 너무 자연스럽게 잘하니까 상업영화를 보는 것마냥 현실감이 생생했다.
떠나는 풍경은 저렇게 평범하고 따뜻했는데, 아이가 마주한 현실은 어느 사각지대의 바닥이었다.
엄마 사촌. 사실 이 관계도가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선뜻 와닿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극히 현실적인, 실제로 존재하는 관계다.
집이라곤 하지만, 그냥 '어느 집'이라 부르는 게 더 적합할 아순시온의 그 공간에서부터 아이들의 억장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걸 탈출해서 도착한 스페인에서의 상황들. 그건 심연을 향한 더 아랫층이었다.
멍하게 스크린만 보면 약간은 뻔한 영화적 충격일지 모르는 범죄 소재들의 등장. 하지만 이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어쩌면 다큐멘터리의 재연 장면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소름이 쫙 돋는다. 현실은 언제나 영화보다 더 지독하니까.
대통령에 영부인 지원까지 받은 공익 캠페인성을 띄는 영화로서, 다루는 비주얼이 다소 직설적이라 순간 흠칫했다. 하지만 그건 과감하게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현실이 이토록 추악하고 잔인한데, 어설픈 은유와 포장은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은유를 지워버린 그 직설적인 연출이 뒤통수를 강하게 때리며 진짜 경각심을 뼈에 새겨준다. 불편하다고 눈을 돌려선 안 되는 진실이니까.
영화 중간에 아동실종 신고 번호인 '147'이 자연스럽게 화면에 노출되는 연출은 꽤 신선했다. 이 영화가 스크린 속 예술로 끝나지 않고, 사각지대에서 울고 있을 누군가를 현실로 건져 올리는 '진짜 비상구'가 되길 바라는 절박함이 느껴져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평범하고 이국적인 이 풍경 뒤편,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지금도 일상적인 비극은 소리 없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제법 오랜 시간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내 일상에서는 이 영화가 다루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니까. 그래서 더 씁쓸하고 미안해진다.
떠나는 값이었을까, 돌아오는 값이었을까. 질문의 무게가 무겁다.
혹시나 이 영화가 필요할지 모를, 사각지대 어딘가에서 아파할 누군가와
그리고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있을 그들에게 이 영화가 꼭 닿기를.